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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눈녹은 산과 계곡

족두리가 먼저냐 족두리풀이 먼저냐

 

족도리풀

Asarum sieboldii Miq.

 

계곡 주변에 나는 쥐방울덩굴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0~15cm.

잎이 보통 두 장씩 달린다. 애호랑나비가 잎 뒷면에 알을 낳고

애호랑나비 애벌레는 족도리풀의 잎을 갉아먹고 성장한다.

4~5월 개화. 수분 곤충은 파리류이며, 개미가 종자를 옮긴다.

한국, 일본, 중국 동북 지방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족두리풀, 세신 외에 열 가지가 넘는 이명이 있다.

 

 

 

 

 

몇 해 전인가 족두리풀을 캐는 노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이 꽃을 찍던 재미가 쏠쏠했던 꽃동산이

멧돼지가 헤집은 듯 초토화되었고, 노인의 마대는 멧돼지 배처럼 불렀다.

팔십이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약초를 캐서 생계를 꾸려간다고 하니

카메라 메고 꽃이나 찍는 한가한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었으랴.

 

족두리풀은 뿌리가 가늘고 매워서 한방에서는 ‘세신(細辛)’이라고 하는데

진해, 거담, 진통, 이뇨제 등으로 쓰이고 감기와 두통에도 좋다고 한다.

족두리풀의 줄기를 살짝 씹어보면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의 자극이 온다.

그것은 초식동물들로부터 이른 봄에 나는 싹을 지켜내는 일종의 독일 것이다.

족두리풀은 이렇게 얼얼하고 쏘는 맛이 있어서 은단의 원료로 쓰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약효가 있어서 만병초(萬病草)라고도 부른다.

 

 

족두리풀은 옛날에 시집갈 때 쓰던 족두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 반대로 족두리가 족두리풀에서 나온 이름인듯하다.

‘족두리’라는 이름이 기록상에 등장한 것은 광해임금 무렵이고

영조 때에 사치가 심했던 가채를 금지하면서 장려한 복식이다.

 

족두리의 원조는 고려 말에 원나라로부터 들어온 ‘고고리’라고 한다.

복식사와 관련된 어떤 문헌을 보니 ‘고고리’가 어찌어찌 하다가

발음이 비슷한 족두리로 변했을 것이라고 얼버무려 놓았다.

족두리풀은 우리나라에 수십만 년 전부터 살아왔던 풀인데,

17세기에 생긴 ‘족두리’에서 그 이름을 차용했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족두리풀은 사람의 머리에 비유될 수 있는 꽃이 땅에 있고,

발이라고 할 수 있는 잎이 위에 있어서 사람이 거꾸로 선 형상이다.

그렇다면 한자문화 시대에 이 풀을 보고, 발(足)이 머리(頭)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족두(足頭)리풀’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족두리풀’이라는 풀이름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원나라에서 들어온 ‘고고리’에 나비 등을 꽂는 장식이 더해져서

족두리풀을 닮게 되자, ‘고고리’가 ‘족두리’가 되었다고 해야 말이 된다.

 

족두리풀의 국가표준식물명은 ‘족도리풀’이다.

국어사전에도 '족두리'가 표준말이라고 나와 있는데,

굳이 ‘족도리’를 국명으로 채택한 까닭을 모르겠다.

나는 어지간하면 국명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발이 머리에 있는 이 풀은 꼭 ‘足頭리풀’이라고 쓴다.

 

2013. 3. 7. 꽃 이야기 193.

 

 

 

 

※ 족두리풀의 분류는 학자들에 따라 견해 차이가 많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8종이 등록되어 있고 20여 종으로 분류한 학자도 있다.

그 중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고 외견상 특징이 뚜렷한 4종만 여기에 제시한다.

 

 

 

개족도리풀

Asarum maculatum Nakai

 

산지의 숲속에 나는 여러해살이풀.

잎에 엷은 흰색 무늬가 있다. 4~5월 개화.

한국 특산식물로 경남, 전남북 등 주로 남부지방과

제주도, 완도, 진도 등 남해안의 섬들에 자생한다.

[이명] 섬족두리, 알락족두리 등 8가지가 있다.

 

 

 

 

 

각시족도리풀

Asarum glabrata (C.S.Yook & J.G.Kim) B.U.Oh

 

반 그늘 숲에 나는 여러해살이풀.

다른 족도리풀들에 비해 잎의 끝이 둥근 편이고,

꽃잎이 뒤로 젖혀지거나 말려있는 형태적 특징이 있다.

4~5월 개화. 서남해안 지방과 주변 섬들에서 자생한다.

[이명] 반들족도리풀

 

 

 

 

 

자주족도리풀

Asarum koreanum (J.Kim & C.Yook) B.U.Oh & J.K.Kim

 

산지의 계곡부근에 나는 여러해살이풀.

다른 족두리풀에 비해서 약간 대형이고

전체적으로 자주 또는 황녹색을 띤다. 4~5월 개화.

충북 지방을 중심으로 내륙 지방에서 주로 관찰된다.

 

 

 

 

 

무늬족도리풀

Asarum versicolor (K.Yamaki) Y.N.Lee

 

산지의 계곡부근에 나는 여러해살이풀.

4~5월 개화. 꽃에 노란색 점들을 뿌린 듯한 무늬가 있다.

과거에 잎에 무늬가 있는 것을 ‘무늬족도리풀’,

무늬가 없는 것을 ‘민무늬족도리풀’이라고 하였으나,

두 식물 모두 꽃에는 점박이 무늬가 있다.

한국 특산으로 경기, 강원, 충북 지역의 높은 산 계곡에 자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