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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가을에 피는 꽃

놋젓가락나물이 전하는 슬픈 역사

놋젓가락나물

Aconitum ciliare DC.

 

숲속에 나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

길이 2m 가량. 줄기가 30cm 정도는 곧게 서서 자라다가

덩굴 모양으로 뻗어간다. 8~9월 개화. 뿌리를 약용한다.

한국(전역), 중국 동북 지방,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선덩굴바꽃

 

 

 

 

멋들어진 덩굴에 연보라색 꽃을 피운 놋젓가락나물을 볼 때마다

저 식물이 놋젓가락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어느 날 운 좋게 전체 모습이 잘 보이는 놋젓가락나물을 만나서

몇 년 동안이나 가지고 다니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었다.

 

그때까지는 덩굴로만 알았던 놋젓가락나물을 자세히 보니

땅에서 두 뼘 정도는 곧은 줄기로 꼿꼿이 서 있었다.

그 줄기는 젓가락으로 써도 좋은 굵기로 곧고 매끈하며 단단했다.

 

그냥 ‘젓가락나물’이라고 하지 않고 ‘놋젓가락나물’이라고 한 까닭은

우선 봄에 노란색 꽃이 피는 ‘젓가락나물’과 이름이 달라야 하고,

그 매끈한 줄기의 질감과 광택이 놋쇠와 비슷했기 때문이지 싶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지을 무렵에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던

식기와 수저가 놋쇠여서 쉽게 그 이름으로 차용되었을 듯하다.

 

 

놋쇠는 구리와 아연의 합금으로 14세기에 제조법을 알게 되었다.

녹이 나지 않고 재질이 단단해서 스텐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신소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릇이나 수저를 만들기에 가장 이상적인 금속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놋그릇에 놋수저를 사용했었다.

 

우리 역사에서 밥먹는 젓가락까지 빼앗겼던 한심한 일이 있었다.

1937년에 중일전쟁, 4년 후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포탄을 만들기 위해 놋그릇은 물론이고 수저까지도 강제로 공출해 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형사들까지 동원해서 집 구석구석을 뒤졌다고 하니

이 땅에 얼마나 놋젓가락이 남아있었을지 짐작이 된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놋젓가락이 다시 돌아온 사연이 더 기가 막히다.

일제에 빼앗긴 지 십여 년 만에 6.25 전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된 뒤에 놋쇠로 만든 포탄 껍질이 산하를 덮었다.

 

식물 이름 하나에서도 슬픈 역사가 생각날 만큼

우리 민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난을 겪어왔다.

정말 슬픈 일은 그런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너무 쉽게 잊어버려서

민족의 자존이 짓밟히던 역사가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2013. 2. 18.

꽃 이야기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