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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눈녹은 산과 계곡

추억의 빨간 주머니, 금낭화

 

금낭화

Dicentra spectabilis (L.) Lem.

 

깊은 산 계곡 부근에 자라는 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

절이나 민가의 뜰에 심기도 한다. 높이 40~50cm.

4~6월 개화. 한국, 중국 등에 분포한다.

[이명] 등모란, 며느리주머니

 

 

 

 

 

 

 

금낭화는 야생화답지 않게 화려한 꽃이다.

깊은 산에서 이 꽃을 만나면 화단에서 많이 보던 꽃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하고 가벼운 혼란에 빠진다.

 

절의 화단에 심은 이 꽃은 특별한 의미로 느껴질 때가 있다.  

불가의 최고 명절인 사월 초파일 무렵에 이 꽃이 활짝 피면

그 어떤 연등보다도 아름다운 연등이 되기 때문이다.

 

금낭화(錦囊花)란 ‘비단주머니 꽃’이라는 뜻이다.

나는 ‘비단주머니’에서 나온 세뱃돈을 받은 세대다.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거의가 빨간 비단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세배를 하면 집안 어른들은 세뱃돈을 주었고

다른 집에서는 떡국이나 설음식을 내왔다.

어느 해 설날 세뱃돈으로 17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집안 어른 열 일곱 분이 1원씩 준 셈이다.

 

 

그 때는 화폐개혁 직후여서 1원 짜리가 아니라

10환짜리 구리 동전을 1원으로 치던 시대였다.

나의 살던 고향은 사방 30리에 점방 하나 없던 산골이라서

어디 써보지도 못하고 자랑삼아 짤랑거리고만 다녔다.

 

이웃 동네 사셨던 큰집 할배는 세뱃돈으로 엽전을 주셨다.

선대께서 과거보러 다니시다 남은 노자라고 들었다.

점방이 없어서 쓸 데가 없었던 동전 세뱃돈보다

제기라도 만들 수 있는 엽전을 아이들은 더 좋아했다. 

 

나는 지금도 떡국을 잘 먹지 못한다.

‘음식 남기면 죄 받는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정초에 이웃 동네까지 사나흘 세배 다니는 동안에

하루에 떡국 스무 그릇 정도는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떡국 공포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금낭화를 보면 주름 쪼글쪼글한 할매 얼굴이 떠오르고,

담뱃대 땅땅 두드리던 수염 긴 할배 모습도 생각난다.

빨간 비단 주머니 주렁주렁 달고 있는 금낭화는

내 유년의 추억이 조롱조롱 열린 꽃이다.

 

 

2013. 1. 22. 꽃이야기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