霧山 2018. 2. 2. 12:22



 











붓순나무      붓순나무과

Illicium anisatum L.

 

상록성 교목으로 5m 정도 자라며, 국내에서는 111종의 나무다.

2월 하순부터 4월까지 지름 3cm정도의 꽃이 피며 열매가 맹독성이다.

제주도와 완도, 진도 등지의 낮은 산지 숲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한라산자락에서 모양도 이름도 생소한 붓순나무를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붓순나무는 생각의 시점을 한 세기 이전의 문명으로 돌려놓는 이름이다.

요즈음은 손에 잡는 필기구보다는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쓰는 글이 더 많지만,

옛날에는 무언가를 쓰려면 붓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붓순나무)  

이름의 의미가 분명해서 어디가 붓순을 닮았을까하고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나무의 겨울눈은 대개가 붓순을 닮았으므로 거기서 나온 이름은 아닌 듯하고,

길쭉하고 하얀 꽃잎이 너풀거리는 듯한 꽃 역시 붓순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마다 꽃이 필 때면 나무를 맴돌며 보물찾기하듯 붓순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던 어느 해 4월에 더 이상 의문의 여지없는 붓순 모양을 찾아냈다.

그것은 꽃잎이 떨어진 뒤에 꽃자루에 남아있는 수술들이었다.


(꽃잎이 떨어지고 난 뒤에 붓순처럼 남은 꽃술) 


붓순나무는 연한 녹색을 띠는 하얀 꽃이 풍성하게 피고 은은한 향기가 있다.

그리고 겨울 끝자락에 꽃이 피어 두어 달 꽃을 볼 수 있어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그렇게 가꾸어진 나무는 길들여진 듯 얌전하나 자연미가 없다.

붓순나무는 야생에서는 아주 드물기 때문에 만남 그 자체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에서 만나는 붓순나무는 초야에 은둔하고 있는 선비를 대하는 느낌이다.

요즘 세태에 돈과 권력에 줄서지 않고 존경 받는 지식인이 희귀하다보니

한라산 숲속에서 만나는 붓순나무가 제대로 된 선비 본 듯 반가웠다.

 

2018. 2. 2.